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세인트루이스 전투 (문단 편집) == 전투 경과 == 5월 25일, 에마누엘 헤세 대위가 이끄는 영국-인디언 연합군이 세인트루이스 인근에 도착했다. 헤세는 척후병들을 파견해 세인트루이스의 방비 상태를 확인하게 했다. 그러나 척후병들은 마을 밖 들판에 어린이와 여자를 포함한 노동자들이 모여 있어서 적의 방비가 어느 정도인지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 다음날 헤세가 이끄는 군대가 세인트루이스 마을에 접근하자, 수비대는 첫번째 경고 사격을 발사해 주민들이 마을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주민들이 미처 피하지 못하고 인디언들에게 살해되거나 포로가 되었다. 이후 수백 명의 수 족과 위네바고 족 인디언들이 머스켓 총을 쏘고 울부짖으며 마을을 향해 돌진하자, 수비대는 재빨리 대포로 그들을 향해 쐈다. 인디언들은 수비대가 대포를 가지고 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에 동요했고, 참호에 배치된 수비대의 일제사격으로 큰 피해를 입자 뿔뿔이 흩어졌다. 이때 후방에 있던 소크 족과 폭스 족 인디언들은 이번 공격에서 얻을 게 별로 없고 수족과 위네바고 족에게만 이로울 것이라 여겨 전투에 소극적으로 임했다. 그러다가 수 족과 위네바고 족 인디언들이 흩어지자, 그들은 마을에 돌격하라는 헤세 대위의 지시를 거부했다. 결국 헤세는 5시간만에 전투를 중단하고 철수했다. 한편 미시시피 강 건너편에서는 영국 원정군 분견대가 세인트루이스 인근의 커호키아를 공격했지만, 조지 로저스 클라크가 이끄는 민병대에 의해 쉽게 격퇴되었다. 이로서 세인트루이스 전투는 스페인군의 승리로 종결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